▲이미지=클립아트코리아

[노동법률] 김승현 노무법인 시선 대표공인노무사

1. 성장해가는 사적 조사 시장(市場) : 이러라고 만든 법이 아닐 텐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된 2019년 7월부터 2023년 3월 현 시점까지 약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필자는 이 법 시행 때부터 사용자의 1차 판단권이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했고 해당 지면을 빌려 기고하기도 하였다. 필자의 우려는 현실화돼 실무에서 구체화된 다양한 유형의 사건들을 만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법률이 입법되기 전부터 남녀고용평등법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관해 사용자의 객관적 조사의무를 부여하고 조사결과 사용자가 성희롱으로 판단한 경우 가해 노동자에게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용자의 조사 및 판단권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한층 강화돼 최근 현장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과 성희롱이 하나의 세트처럼 조사대상이 되고 사용자에 의해 판단대상이 되고 있다.(이하에서는 '괴롭힘 등'으로 표현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사용자의 객관적 조사 의무는 사용자의 자의적ㆍ편의적 구조조정의 도구로 변질돼 활용되고 있으며 조사에서 아무런 통제를 받지 않는 사적 전문가가 취하는 시장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커졌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노노갈등 양상은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확대됐다.

피해자도, 가해자도 서로를 신고해 타격을 주는 방식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때로는 무리 지어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을 위해 가해자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사용자의 조력으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거나 새로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필자가 요즘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이러라고 만든 법이 아닐 텐데…"

2. 노동청은 괴롭힘(근로기준법 위반) 인정에 관여하지 않는다

괴롭힘 등 신고 시 사용자의 조사행위는 의무이고 고용노동부는 사용자가 의무를 다했는지를 주로 감독할 뿐 사용자 조사 및 판단의 실체적 정당성에 대한 개입은 자제한다. 근로자가 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면 노동부는 사용자에게 조사를 명하는데, 사용자가 조사하고 판단한 결과를 제출하면 대부분은 그것으로 사건이 행정종결된다. 

사용자가 괴롭힘 등이 아니라 판단하고 종료한 사건을 다시 노동부에 신고한 경우 노동부는 실체적 정당성(괴롭힘 여부)을 검토하기도 하지만, 그 기준은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용자의 의도대로 괴롭힘 등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예컨대 욕설이나 그에 준하는 가해 행위에 명백한 증거가 있어도 노동부는 일회적이었거나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반대의 경우, 즉 사용자가 누군가로부터 신고를 받고 조사해 직장 내 괴롭힘 등이 성립한다고 인정하면 노동부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피신고자)의 노동청 신고 가능성'에 관한 필자의 문의에 노동부는 "직장 내괴롭힘 행위자로 판단된 자는 노동관계법령의 위반행위로 권익을 침해당한 자 또는 제삼자에 해당되지 않을 것이므로, 행위자로 판단된 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없었다는 취지로 진정 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사용자의 객관적 조사의무 및 행위자에 대한 징계 등 조치의무가 있는 현행법하에서 불공정한 조사결과가 노동자의 권익침해가 아니라는 답변은 아리송하기만 하다. 사용자의 객관적 조사 의무에 대한 행정처분은 고사하고 행정지도마저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노동부의 답변이었다.

3. 눈앞의 힘이 법보다 가까운 현실에서 사용자의 조사권 및 판단권은 절대적이다

괴롭힘 인정 권한이 오롯이 사용자에게 있는 현행 시스템은 사용자 스스로 정의롭고 공정한 조사를 하고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을 것이 전제될 때만 정의롭다. 그러나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이윤 추구이지 정의 실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용자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은 두 가지다. 공정한 조사행위로서 얻을 구체적 이익이 있거나 공정한 조사를 하지 않을 경우 어떤 불이익을 받는 경우다. 현행법은 사용자에게 객관적 조사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만 법으로 강제되는 객관적 조사의 방법도 없거니와 앞서 보았듯이 노동부는 형식적 조사를 이행했는지를 감독하는 기관일지는 몰라도 객관적 조사의 실질적 심사를 하는 행정은 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선 사용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최근 법원은 사용자의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 대해 "사용자의 사실 확인 조사가 객관적임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의 현실적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대법원 2022. 7. 12. 2022도4925 심리불속행 확정) 이 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한 노동자가 법률상 피보호 지위를 획득했음에도 사용자가 법률을 위반해 불이익 처분을 했는지가 쟁점이 된 사건으로, 사용자가 기신고된 신고 노동자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임의로 판단해 종결했다고 해서 기신고인 노동자의 법률상 피보호 지위가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이다.

직장 내 괴롭힘 법률이 시행될 무렵 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판단에 관한 가이드를 제시하긴 했으나 여기에는 실체적 사건의 경위를 파악할 사용자의 조사 방법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4년 무렵의 시간이 흘렀으나 가이드는 보완되지 않았고 현재는 노동부 스스로도 자신이 낸 가이드에 맞춰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절차적 정당성은 단순히 선언적 형식적인 것이 아니다. 절차는 실체적 정당성을 담아내기 위한 도구다. 사용자의 조사는 그러한 도구가 없다. 때문에 노동자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사용자의 비전문적 조사에 응해 무조건 잘못을 빌거나 철저하게 사용자의 지배에서 벗어나 사용자 조사결과를 묻고 대응할 수 있는 법원 등 구제기관을 만나기까지 버텨 내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 내 압박은 동료들까지 외면하게 해 정신적으로 힘들 뿐만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드는 법률 분쟁은 늘 사용자보다 노동자에게 상대적 부담이 크다. 때문에 현실은 실체적 진실에 따른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상황을 이탈하는 결정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경우가 많다. 즉 누군가는 억울해도 사용자의 조사와 판단의 적법성은 판단되기 어렵다.

4. 회사의 의뢰를 받아 조사하고 판단하는 전문가는 회사의 비용으로 일한다

직장 내 괴롭힘 제도가 도입되면서 사용자의 사적 조사행위의 형태는 다소 변했다. 과거에는 스스로 조사하고 징계로 나아갔다면 이제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웬만한 사기업들도 외부 전문가에게 조사행위를 위임한다. 이 경우 표면적으로는 공정성, 객관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조사자를 선정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현실에서 외부기관의 조사에는 사용자의 의도가 그대로 투영될 수밖에 없다. 

조사행위를 대행하는 전문가에는 대형 로펌도 꽤 있지만 상당수는 필자와 같은 노무사이고, 이 시장은 4년 사이 상당히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사자인 전문가의 역량은 큰 편차를 보이고 질문 구성, 방어권 보장, 증거력 판단 등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로 보이지 않아 노동자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용자의 사적 조사대상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고 조사결과 인정된 사실은 인사위원회 등 징계권자의 판단대상이 된다. 조사결과에 따라 가해자에게 징계 등 불이익처분이 가해진다는 점에서 형사소송법상 수사기관의 수사, 검찰의 기소, 재판과 유사하지만, 사용자의 사적 조사는 아무런 법률상 통제를 받지 않는다.

법원도 사용자의 징계권을 다소 '고유권설'에 입각해 판단하고 있어서인지 징계의 절차와 조사 방법 및 판단 방법 등 구체적 조사행위를 사전에 취업규칙 등으로 규정하지 않았다면 사용자의 재량이라 하고 부실한 조사가 있었더라도 이를 위법한 것으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즉 스스로를 통제하는 규정을 사용자 스스로 만들지 않는 이상 법원은 해석론을 통해 사용자의 폭넓은 (혹자는 광범위한 재량) 재량을 인정하고, 사용자의 위임을 받은 조사자는 그러한 재량에 따른 방법으로 피해자 및 가해자를 조사한다.

4년여 기간이 흐르며 사용자의 사적 조사를 위임받는 전문가 시장(市場)에는 위기감이 감돌기도 한다.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강사를 양성하는 교육을 받은 동료 노무사의 전언에 따르면 노무사들 사이에서도 자신이 조사한 직장 내 괴롭힘 등 행위가 법원에 이르러 조사 부족 등을 문제로 징계가 무효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경험담을 공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동료 노무사의 말에 따르면 교육 커리큘럼에 무엇을 어떻게 조사해야 하는지 특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 방법에 대한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5. 사용자의 사적 조사행위 통제하는 법규 만들어야

직장 내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은 단순한 직장질서 위반이 아니라 법 위반이다.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조사 및 판단 권한을 사용자에게 부여하는 것이 과연 적정한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있다. 통제받지 않는 사용자의 조사권 및 판단권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작동된다. 이렇게 행사되는 징계권은 헌법이 확인한 무죄추정의 원칙, 죄형법정주의를 쉽게 무시할 수 있다.

사용자의 조사권한 남용을 방치하는 것은 일반적인 노동관계 정의 관념에도 맞지 않는다. 분쟁을 적절하고 용이하게 해결하고 평화로운 노동관계 정립이라는 이념에 동의한다면 사용자 재량에 맡겨진 현행 조사 및 판단 방식은 가해자든 피해자든 쉽게 수긍하기 어려워 분쟁을 확대하고 장기간 지속하게 한다. 

필자가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객관적 기준 없는 사용자의 사적 조사와 판단권으로 인해 노노갈등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문제되는 조사대상인 괴롭힘 및 성희롱은 일부 명백한 사안을 제외하고는 시대적 배경, 사회적 관념, 인식의 차이 등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객관적 조사 절차는 없고 사용자의 자의적 판단만 남은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서로 누가 먼저 신고하는가의 경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근로기준법 신고자 불이익 조치 금지원칙으로 인해 사실상 직장 내 괴롭힘 등 신고를 먼저 한 노동자가 유리하다)

사용자의 사적 조사행위 및 사용자 판단 없이 현행 제도를 유지할 수 없다면 통제의 방법은 찾아야 한다. 그 기관으로 적정한 기관은 노동관계를 감독하는 기관인 노동부로 보이며, 각 사안의 정밀한 사안까지는 감독하지 못할지라도 매뉴얼을 만들어 사용자의 각 조사 항목을 점검하는 정도의 감독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러한 행정관청의 감독이 가능하도록 기존 법률의 정비도 필요해 보인다.